봄 나들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냉이 햇쑥이 겨우내 놓았던 입맛을 당겨올 것이다. 얼어붙었던 대지위에 사관을 틔우듯 피가 돌고 아지랑이 아롱거리며 온기가 풀리고 있다.
쑥은 지구의 숨구멍이다. 생명을 이어주는 세포가 살아있는 한 숨구멍은 열리게 된다. 쑥은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이다. 초근목피를 못 면하던 춘궁기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절에 쑥은 쑥떡, 쑥국, 쑥버무리 등 다양한 먹을거리로 진화해 긴긴 봄날의 허기를 메워주곤 했었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인간으로 환생했다는 설화처럼 쑥과 우리 한국인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쑥의 강인한 생명력은 일본의 나가사키, 히로시마 피폭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초본이라하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시인 TS 엘리엇은 황무지란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이라’고 노래했다.
봄은 이처럼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돋아나는 계절이다. 긴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새싹들의 합창이 들려오는 듯하다.
봄비가 잠든 뿌리를 흔들어 깨우면 라일락이 보랏빛 향기를 코끝에 날리고, 혹한을 어금니로 견디며 겨울을 이겨낸 나목들도 새잎을 틔운다.
나는 이맘때쯤이면 정자나 주전 바다를 찾아 도심의 회색빛 공기에 찌든 폐를 산소통 같은 해변의 대기순환 모드로 바꾼다. 띠처럼 길게 이어진 해변을 가벼운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걷다 보면 발에 꼬들꼬들 생선 말리는 풍경을 지나 잘 말린 미역 한 오리 쯤 사서 손에 들게 한다.
당사마을 어디쯤 가다 보면 간장이나 젓국 달이는 간간한 냄새가 향기롭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이 작은 마을에도 얼마나 많은 사연이 아낙들의 한숨을 불러왔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태풍에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나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한인들 어디 하나 둘일까. 겉모습만 보면 다들 무람 없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마음의 눈으로 스캔해보면 나남없이 인생을 허덕허덕 살아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당사마을 느티나무
[류윤모]
한 여름 찌는 듯한 폭양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널따란 느티그늘은
일월日月의 손길로
덕지덕지 기운 흔적 역력하다
넝마조각같은 그늘을 속속들이 펼치면
장삼이사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올 것만 같다
갈라터지고 옹이지고 문드러진 세월이
거친 물살처럼 훑고 지나 간 흔적
잔인한 시간의 떡메에 맞아
불구가 된 형상의 저 비통한 곡절은
필시 핍박받고 소외된 자들의
응어리진 노래 같은 것
자식 몰래 내 뱉는 이 땅의 어미들의
한숨 같은 모성의 , 또는
드러내 놓고 크게 한번 울지도,
웃을 수도 없는
소금 짐 같은 생애를 묵묵히 감내해온
빚진 아비들의 등짝 같은 고통의 ,
저 그늘을 도려내면 파도 發
이 어촌 마을의 해묵은 슬픔까지도
통째로 들어내 질까
그래도 산목숨은 살아야 된다는 듯
한 일자로 굳게 입을 다물고
지아비를, 자식을 데려간
원망스런 바다를 떠나지도 못하고
눈 속에 뼈저린 연두색 짓쳐 들
이듬해 봄이 오면 노쇠한 손길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것들이나 거두며...
뿌리 깊은 마을의 지킴이가 되어
오가는 이들의 발자국 깃들었을
당사마을 느티나무
무더위에 발이 묶인 길손은
머리 위 토란잎을 덮어쓴 아이처럼 서서
눈 속의 이 느티 그늘이라도
같이 아파해야 겠다
걷다가 걷다 보면 배꼽이 출출해질 테고 이 봄에는 도다리 쑥국으로 점심. 마음에 점을 찍는 것도 놓았던 입맛을 당겨오는, 후회 없을 안성맞춤의 메뉴가 될 것이다.
도다리를 익혀, 뼈를 다 발라낸 후 쌀뜨물을 붓고 도다리살에 된장을 풀어 한소끔 끓여낸 다음 햇쑥 한 움큼과 마늘, 풋고추를 넣는다. 도다리 살이 햇쑥과 어우러져 포르스름한 빛깔의 도다리 쑥국은 겨우내 멀어져간 입맛을 당겨올 것이다.
봄은 도다리의 산란기인지라 암컷은 알을 배고 수컷은 이리(정액)을 가득 품어 짝짓기 철인지라 별미 중 별미라고 한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이즈음이면 보리싹을 넣고 끓여내는 홍어 애국이 봄기운을 차리게 한다고 전한다.
이 봄에는 해변을 드라이브하면서 봄맞이하는 건 어떨지.
글/류윤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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