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숨결, 한계령

초록의 숨결, 한계령

매년 봄이 오면, 마음이 먼저 그곳으로 달려간다. 강원도 깊은 골짜기, 설악산의 품에 안긴 한계령 휴게소.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해진다. 이곳은 내게 봄이 시작됐음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이정표다. 

굽이진 고갯길을 오를수록 마음은 오히려 평온해진다. 나뭇가지마다 싹튼 연두빛은 어느새 초록으로 짙어지고, 도로 옆을 흐르는 물줄기와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속삭임이 조용히 가슴을 두드린다. 

산속에 기대 앉은 듯한 휴게소는 그저 쉬어가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에는 촉촉한 나무 냄새, 흙 내음, 그리고 봄 공기가 어우러져 있다. 그 익숙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마음속 깊은 기억의 서랍이 열리는 듯하다.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이 밀려온다.

고개를 들면 설악의 능선들이 겹겹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웅장한 바위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날카롭지만 고요한 그 바위들은 오래된 시간처럼 묵직하다. 말없이, 그러나 분명한 위로로 나를 내려다본다. 

이 계절의 설악은 부드러운 연두를 지나 생기 있는 초록으로 물든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은 겨우내 굳었던 마음의 틈을 조용히 파고든다. 나는 그 바람에 귀를 기울인다. 계절을 지나온 나의 흔적들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스쳐 지나가지만, 나는 잠시 머문다. 그리고 다시 떠난다. 한계령은 그런 곳이다. 놓쳐버린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특별한 경계. 지나고 나면 그냥 길이지만, 머무는 순간엔 인생이 된다.

돌아가는 길. 점처럼 멀어지는 휴게소를 창밖으로 바라보며,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한계령의 봄은 내게 단지 계절이 아닌, 마음의 귀환이다.

다시 이 길을 오를 그날까지. 나는 일상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봄이 오면, 또다시 이 길을 따라 오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를 만나기 위해.

 

 

윤원지 기자 (myab11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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